아무리 얘기해도 사람들이 잘 듣지 않는 일의 하나로, 종교개혁 시기 개혁 교회에서는 사순절을 폐하였다고 강조하고 칼뱅과 청교도들은 사순절 등 특별한 절기를 지키지 않고 매일매일 십자가의 빛에서 살아가야 함을 강조했다고 해도 그런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는 일을 언급할 수 있다. 그래서 이 문제를 다시 언급하려고 한다.
장 칼뱅은 그의 주저 ‘기독교 강요’에서 천주교에서 사순절을 미신적으로 지켜 나가는 것의 폐해를 지적한다. 그는 모든 종교적인 행위를 오직 성경의 가르침에 근거해서 해야 하는데, 성경에는 사순절을 지키라는 규정이 없으므로 이를 지키는 것은 성경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만든 인간의 규례를 따르는 것이라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칼뱅은 양심의 주인이신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오직 하나님께서 성경 가운데서 규정한 것만을 따라가야 한다는 양심의 자유를 천명한다. 청교도들은 이런 칼뱅의 입장에 충실해 당대 천주교회와 성공회에 남아 있던 인간들의 규례를 철폐해 나가는 일에 열심이었다. 그러므로 적어도 칼뱅의 가르침을 따르고 청교도들을 존중하는 이들은 사순절을 지키며 이 기간 어떤 특정한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야 한다.
우리가 생각해야 할 근본적인 원칙은 오직 성경이 말하는 것에 근거해서만 교회의 여러 행위를 한다는 원칙이다. 사순절의 여러 문제를 지적하고 그리스도인은 항상 십자가와 고난의 빛에서 살아야 한다는 루터의 말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사순절 기간을 지켜가는 루터파, 성공회와 오직 성경이 가르치는 방식에 의지해 예배와 교회의 모든 일을 하려던 개혁파가 바로 이 지점에서 같은 개신교도임에도 분명한 차이가 나타난다. 루터파와 성공회는 이전 교회의 전통 가운데서 성경에 명확한 반대가 있는 것, 예를 들어 예배당 안에 있는 형상 등만 없앴다. 그리고 나머지는 그대로 둔 데 반해 칼뱅을 따르던 개혁파와 청교도들은 그 외의 것, 그저 빈 형상으로서의 십자가나 사순절 같이 ‘성경이 말하지 않는 것’을 일체 버렸다.
둘째는 비성경적인 것을 열심히 행하는 것이 ‘위선’임을 지적하는 개혁자들의 말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대개 사람들은 성경에 없는 것을 만들어 낸 후 그것에 종교적 의미를 부여해 그것으로 말미암아 사람들은 사순절 등을 잘 지켜 나가는 방식을 만들기 시작한다. 또 그런 것이 은혜를 받을 수 있는 좋은 방안이라고 하기도 한다. 그러나 좋은 의도에서 행하는 이런 것이 성경에 근거하지 않을 때는 그것도 ‘위선’이라는 개혁자들과 정암 박윤선 목사의 말을 새겨들어야 한다. 하나님을 위해 정성껏 하는 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위선’이라면 그 얼마나 불쌍한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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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첫째는 우리는 모든 우리의 시간을 항상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빛에서’ 살아야 한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고난을 생각하며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구속되었다는 감사의 마음으로 살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의 고난과 십자가의 길을 따라가려 해야 하고 그리스도의 부활 생명이 약동하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 그것은 어떤 시기만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고 ‘항상 그리해야 한다’는 것이 관건이다. 이것이 칼뱅과 청교도들이 강조한 요점이다. 십자가와 부활의 빛에서 매일 살아가기에 어떤 특별한 절기를 지키지 않는 것이다. 여기에 구약과 신약의 차이가 나타난다.
둘째로는 사순절뿐 아니라 우리의 신앙생활 방식 중 성경에 명확한 근거가 없는 것은 개인적, 집단적으로 개발하기보다 좀 더 성경적 근거가 있는 것을 따라 신앙생활을 하도록 하는 일에 앞장서야겠다. 이것이 칼뱅과 청교도들을 존중하고 따르는 교회와 그런 교회에 속한 교인다운 것이다.
한국 교회에도 오래전부터 사순절을 지키는 분위기가 강하게 들어왔다. 이것을 지키지 않는 것이 이상하게 여겨질 정도다. 사순절을 지키는 시대 분위기를 거슬러 가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지만 바로 이런 점에서 개혁자들이 한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었는지를 생각하며 그들이 하나님 말씀에 근거한 교리만을 믿고 다른 것을 폐지하며 하나님 말씀에 근거해 실천하려 한 것을 기억하며 우리도 그렇게 나아가야겠다. 성경과 역사의 교훈에 근거해 시대에 거슬러 가는 우리이기를 바란다.
글 : 이승구 목사 (합동신학 대학원 교수)